석문호흡

수련체험기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법

글쓴이: 김훈태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법

-인덕원도장 김훈태(교사, 30대 초반, 대맥)

처음 도장에 들어섰을 때를 잊을 수 없다. 도장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아 있으니 왠지 숨쉬는 것이 편안했다. 숨이 부드러웠다고 해야 할까. 지원장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이 느낌을 여쭈어 보았더니 실제로 도장 안의 기운이 밖과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하셨다. 어떤 분은 너무나 신기하여 스무 번 이상 문을 열고 들락날락하며 호흡의 차이를 느껴보았단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내 몸이 무언가를 분명히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자연스럽게 믿음이 갔다. 그렇게 수련을 시작하였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수련 시작과 함께 석문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거의 다 찾아보았다. 특히 재밌게 읽은 것은 한당 선생의 ‘천서’와 ‘한당도담’, 그리고 한성 문사의 ‘조화조식’이었다. ‘천서’는 약간 거친 정리 같았지만 정신세계를 직접 체험한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확신에 찬 울림이 있었고, ‘한당도담’은 소탈하면서도 간절한 깨달음의 메시지가 편안한 형식으로 편집돼 있어 언제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조화조식’은 정신세계에 관한 풍부한 이야기가 상당히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어 놀라웠다. 깊은 감동을 받으며 조금씩 읽어나갔다. 나중에 ‘석문사상’이 출판되어 나왔을 때는 진심으로 감격스러웠는데, 석문도문의 사상적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음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당대의 종교와 철학, 정치, 과학 등이 총망라되어 통섭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이 책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사상서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와식행공을 하면서 자주 행복감과 기쁨을 느끼곤 했지만, 수련은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었다. 내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기에 그랬을 것이다. 학교 일이 바쁘게 돌아가면 도장에 나가는 건 고사하고 집에서도 따로 수련을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이걸 왜 하나?’ 하는 회의도 들고, 몸이 안 좋아질 때는 ‘혹시 수련을 잘못해서 그런가?’ 하는 의혹도 들었지만 한사님과 여러 도반님들의 격려로 꾸준히 수련을 이어갔다. 정성을 다해 와식행공과 본수련을 하고 나면 시원하고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한 것처럼 온몸, 온마음이 신선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어지럽던 마음이 진정되고 뜨거웠던 머리가 차분하게 식었다. 일단 행공을 하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편했다.

게으른 탓에 1년째 와식을 하던 나에게 ‘한달 100행공’이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덕분에 바쁜 학기를 마치고 겨울방학을 이용해 집중적으로 행공수련을 하였다. 한 달에 10행공도 채 못하던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한 것이다.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일념으로 100행공을 넘겨 수련을 하고 나자 아랫배에 묵직하게 기운이 쌓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수련을 생활습관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렇게 좌식으로 올라섰고, 좌식은 생각보다 일찍 끝냈다. 와식 때는 아무데서나 누울 수 없기에 축기가 힘들었는데, 좌식을 하고 나니 어디서든 가만히 앉아 의수단전을 할 수 있었다. 무엇을 하든 그 일에 집중하며 마음은 단전에 두었다. 자연스레 호흡이 아랫배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좌식을 거쳐 대맥수련을 시작하면서 나 자신과 주변에 많은 일이 생겼다. 대맥수련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심한 몸살감기를 앓았는데 폐렴을 의심할 정도로 혹독한 병치레를 한 것이다. 거의 한달 동안 일을 끝내면 집에 돌아와 잠만 자고, 온몸 구석구석에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한사님께서는 대맥수련을 하며 몸에 근본적인 변화가 온 것이라고 하셨다. 몸 안에 ‘홍수’가 난 것이라는 말씀에 확 와 닿는 게 있었다. 큰비가 내려 탁한 몸의 구비구비를 씻어내는 것이리라. 겨우 감기기운이 물러가고 난 뒤에는 뭔가가 확실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대맥수련을 하는 내내 그동안 적당히 묻어두고 좋게 좋게 지내왔던 갈등들이 봇물 터지듯 터지는 걸 느낀다. 예전 같으면 당황해서 안절부절 못했겠지만 이제는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나 자신의 중심이 하단전 석문임을 이제는 기운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의 중심은 하단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상단전의 생각이나 중단전의 감정이 아닌, 하단전의 의지로 받아들이다 보니 두려움과 걱정도 많이 사라졌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직관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나는 나의 일에 집중을 하면 되는 것이고, 세상의 일과 남의 일은 세상과 남이 하도록 내버려둠으로써 번잡스러운 생각이 사라진 것이다. 단지 나는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면 될 뿐이었다. 이것이 대맥수련까지 하면 내가 배운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내 중심이 잡히지 않던 시절에는 교사로서 아이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편안히 보지 못했다. 어떻게든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대신이라도 아파해주려 했다. 그러면서 늘 내가 힘들었다. 처음의 뜻과 달리 일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나면 ‘나’는 잊혀지고 아이들이 전부가 되었다. 이런 삶은 진정한 행복의 길도 아니고, 삶의 주인으로 바르게 서는 길도 아님을 호흡수련을 하며 분명히 깨달았다. 우선 나부터 삶의 주인으로 우뚝 서야 했다. 그러면서 관점도 바뀌었다. ‘괴로움’이 성장하는 인간에게는 보약과 같은 선물임을 알 게 된 것이다. 고통이 없다면 결코 성장도 없다.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참되게 살지 못해서인데, 참되게 살지 못하면서 괴로움만 없어지길 바란다는 것이야말로 형용모순임을 분명히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아이들이 괴로워해도 편안하게 봐줄 수 있게 되었다.

겨우 대맥수련 단계임에도 일상이 몰라보게 풍부하고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같은 책을 읽어도 전혀 느낌이 다르다. 내 몸 안에 기운이 유통하고 있기 때문일까? 석문호흡이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뛰어난 수련법임을 요즘 더욱 체감하는 중이다. 숨결에 나 자신의 의식을 모두 맡기고 나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쁨과 밝음, 그리고 자유로움을 느낀다. 이제야 비로소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도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를 좀더 명확하게 바라게 되었다. 삶의 주인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자기 삶을 창조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의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이고, 우리는 저마다 주인이기 때문에 한 순간 한 순간이 진지하고 즐거운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폭풍우 치는 바다의 표면과 같다. 먹장구름이 우르르 몰려가고 천둥번개가 어지럽다.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따라 파도가 사납게 넘실거리는 게 우리의 일상이자, 마음의 풍경이다. 우리의 호흡이 낮고 들떠있다면 삶 역시 그러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빛이 담긴 숨결을 한 숨 한 숨 정성스럽게 아랫배까지 내려 보낸다면, 우리는 바닷속 깊이의 고요처럼 평온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석문호흡은 우리를 저 깊은 의식의 바닷속으로 데려가준다.

삶의 주인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표면의 의식에서 일희일비하거나 부화뇌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깊은 나,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물론 우리는 당장 그런 기쁨과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 깊이 호흡하는 법만을 제대로 배운다면 말이다. 석문호흡은 더 깊은 의식으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지도이자, 튼튼한 배가 될 것이다.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면 당장 호흡부터 배울 일이다.

‘숨’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기억을 넘어
본래 나 자신이 처음 시작되었던 자리
하늘로 갈 수 있는 기적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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