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호흡

수련체험기

나는 석문호흡을 왜 할까?!

글쓴이: 화빈



나는 석문호흡을 왜 할까?!

   20대 젊은 시절에는 방황을 많이 하였다. 현실이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도피하고 누구와도 교류 없이 집에 혼자 있고, 때론 나의 내면에 스스로 반항하고 현실에 순응하지 못하고 현실을 도피하며 암울한 시절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니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혼돈으로 방황을 한 것이었다. 이상과 현실에서 차이를 느끼고 그냥 모두 마음에 안 드는 일들만 눈에 보이고 일상사 일들에 매이기 싫었다. 그 시절에는 왜 그러는지를 모르니 방황할 수밖에 달리 어떤 방법을 몰랐다.

 학창시절에는 기독교 학교를 다녀 교회를 다니기도 했지만 성인이 되어 우연히 불교를 접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름대로 열심히 수행을 한답시고 폼 잡고 다녔다. 그러던 중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성철스님 문하에서 교리중심이 아닌 선(禪) 중심으로 용맹정진과 화두선을 하며 이 생(生)에 한 번 깨우쳐 보겠다는 열망을 가졌고,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어린이 포교에 집중했다. 수행과 교리공부(禪, 敎)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한쪽에만 치우쳤다. 편협한 사고(思考)가 불교공부를 하면서 더 심해졌다. 지식은 알음알이라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으로 불교의 지식을 멀리하고 오로지 선에만 몰두 하였다. 깨우치면 모든 게 해결 될 것이라 믿었다. 사회에서도 사람과의 조화를 못 이루어 혼자이고 싶어 했는데 계속 그게 문제인지도 모르고 혼자만의 공부만 하고 있었다. 이것 역시 반쪽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두를 받아 화두선을 시작하는데 호흡이 아랫배까지 내려가야 안정이 되고 오래 앉아 집중을 할 수 있었는데 호흡이 배꼽에서 안 내려가니 거기에 신경이 쓰여 화두선이 되지를 않고 잡념만 일어났었다. 아이들에게 명상을 시키는 데에도 한계를 느꼈다. 어쩌다 누워서 호흡을 하니 편안하고 느낌이 좋아 하루는 스님에게 여쭈어봤다. 그런데 스님도 호흡에 대하여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요즘 사람들은 절을 하면 복식호흡이 되고 건강에 좋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내가 직접 해 보았을 때에는 건강에도 좋고 복식호흡까지는 되었는데 배꼽위에서만 이루어지는 호흡이라 한계를 느꼈다. 복식호흡도 내가 바라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지금은 단전이 자리잡은 상태에서 절을 하면 한 호흡에 일어났다 앉았다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단전자리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절을 할 때에는 호흡의 중심이 없으니 숨이 가쁘게 몰아쳐져 몇 호흡 지나면 가슴으로 헐떡이게 된다. 절을 하여 호흡을 다스린다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참선을 하는 내가 왜 호흡에 대하여 의문이 일어났을까? 선도나 단전호흡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오로지 열반, 해탈, 깨달음, 어찌하면 견성(見性, 깨달음)을 할까. 이런 것만이 숙제로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해탈, 깨달음 이런 것들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곁가지인 것을 本인 줄 알고 호들갑을 떨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호흡의 중요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사람은 항상 궁(窮)하면 열린다는 말이 있듯이, 우연히 동생네 집 책장에 한당선생의 석문호흡법이라는 책이 내 눈에 들어 왔다. 그 때까지 나는 항상 불교 책만 봐 왔을 뿐 그 어떤 책에도 눈길을 안 주었는데, ‘어찌 그 책에 시선이 갔을까? 언제부터 그 책이 거기에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때 처음으로 석문호흡과 인연이 되었다.

와식(누워서 호흡함)이라는 단어 하나만 보고 석문호흡에 입문하였다. 와식한다고 누워서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맞춰 화두를 들고 있었다. 와식이 필요하니 호흡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심법이 뭔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내가 필요한 건 오직 호흡 하나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화두를 붙들고 있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습관이 두텁고 질긴지 석문호흡을 하면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습관(業) 닦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는가? 업이 꼭 나쁜 것만 있는 것인가 선업(善業)도 업이요 악업(惡業)도 업이지 않든가! 최근 물리학에서는 내가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의 정보가 세포 하나하나에 빛으로 저장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내가 하는 모든 행위가 빛의 정보로써 나의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고, 세상과도 교류하기에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석문호흡을 하면서 몸소 깨우쳤다. 즉 과학에서 밝혀 낸 사실을 스스로가 체득(体得)한 것이다.

 호흡을 잘 해 보려고 석문호흡을 시작한지 어언 14년이 지났다. 석문호흡을 하면서 몸의 안 좋은 부분이 많이 드러났다. 그 동안 내가 그다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인식을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몸의 정화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정화도 일어났다. 소주천 때 몸과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서 나 스스로 석문호흡은 성명쌍수법(性命雙修法)이라 했다. 그랬더니 석문호흡에서는 정기신 삼수법(精氣神 三修法)이라고 하였다. 몸이 좋아지면 마음과 정신이 밝고 좋아질 수밖에 없다. 나의 몸속에 마음과 정신이 같이 존재하니 몸과 마음과 정신이 같이 좋아지지 않으면 그것 또한 반쪽의 공부인 것이다.

깨친다는 것 역시 정신적인 깨달음이라면 몸이 먼저 좋아짐으로써 마음과 정신에 에너지가 충만하여 우리가 원하는 궁극적인 깨달음까지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기(氣)가 에너지요 빛이라고 보았을 때 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올바른 단전호흡법이 존재한다면 몸과 마음의 건강과 안정, 정신적인 깨달음까지 모두 가능하지 않을까?

정(精)은 몸이요, 기(氣)는 마음이요, 신(神)은 정신이다. 그래서 연정화기(練精化氣), 연기화신(練氣化神)이라고 한다. 몸이 아프면 마음공부가 일어나기 힘들 것이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정신적인 깨달음이 쉽게 일어나겠는가. 석문호흡의 각 단계를 거쳐 오면서 심득(心得), 깨달음들이 일어났다. 이런 심득들이 마음에서 충만하게 일어나 나 자신이 수련을 계속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와식에서 기화신까지 얼마나 인생이 즐겁고 신이 나던지, 봄에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느낌을 받으며 삶을 살아 올 수 있었다. 정말 세상 한번 잘 살고 있다는 마음이 일었다. 힘겨움이 있을 때에는 정화되는 과정이라 생각을 하고 수련을 하다보면 힘겹다는 생각 없이 지나갈 것이다. 인생살이가 좋은 일만 있겠는가. 하물며 자기 자신의 근본을 찾아가는 道(도)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데 좋은 일 만 있겠는가. 나는 석문호흡을 만난 후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제일 행복했다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내가 나답게 살아온 것이다. 스스로 낮아져 하심(下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내면에 충만한 에너지로 가득하여 만족감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내면의 만족감을 모르고 계속 뭔가가 채워지지 않는 욕구불만으로 인하여 무절제한 쇼핑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는 물질만능주의에서 오는 폐해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물질적인 욕심을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할까? 호흡으로 기운(氣. 에너지, 빛)을 채우면 진기(眞氣)가 채워진 만큼 물질에 대한 집착이 조금씩 덜어짐을 몸소 깨달아 왔다. 이것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충만감에서 오는 심득(心得, 깨달음)이다.  현재의 나는 스스로 혼자서도 행복감을 느끼고 여러 사람과도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처럼 여러 사람과 어울려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게 하는 힘은 석문호흡수련에서 나오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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