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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도담

[석문사상] 2. 왜 도인문화 ・ 도인문명인가? 2) 철학과 종교의 한계

글쓴이: 도담지기



석문사상 증보2판


2. 왜 도인문화 ・ 도인문명인가?

2) 철학과 종교의 한계

동양에 수행철학이 존재했다면, 서양에는 사유철학이 존재했다. 동양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하늘(완성)에 이르기 위한 수행의 방법론을 찾는 가운데 철학이 정립되고 확립된 반면, 서양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본(本)과 정체성을 알기 위해 끊임없는 사유를 거듭하는 가운데 이성과 합리가 발달하면서 철학이 정립되고 확립되었다. 그 형태는 달랐지만 동서양 철학 모두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근원에 대한 성찰과 탐구에서 출발한 동서양 철학은 이후 물질적 기초 위에서 발전한다. 인구가 증가하여 의식주 문제가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생산과 분배 활동을 의미하는 경제문제, 그리고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는 위계질서에 해당하는 사회체제 및 권력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치가 등장했는데, 정치는 철학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인간과 세상의 근본을 연구하는 학문이 철학이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가들은 철학을 바탕으로 세상의 실질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철학은 물질세계의 발전과 조응하며 인간의식을 일정 수준까지 성장시켰지만, 본질적인 부분은 해소하지 못했다. 철학 또한 불완전한 인간에게서 비롯된 산물이었기에 인간을 궁극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물질적 기반을 가진 인간의 문제를 성찰하고 탐구해서 해결하는 과정과 절차에서 인류의 정신은 역으로 물질 구조에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자신의 본(本)과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오히려 자신이 만든 문명의 이기에 지배당하면서 인간의 존엄이 상실되는 사회 구조가 조성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본(本)과 정체성을 중심으로 세상의 이치와 원리를 논하던 철학은 명목상의 대안일 뿐, 실제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동력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철학이 일상생활과 괴리되기 시작한 것은 철학 자체의 난해함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실 변화의 힘을 상실한 철학의 한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어떠한가?

역사의 기득권자와 승자들이 사회통합을 위해 가장 먼저 활용한 것이 종교였다. 그들은 종교를 통해 권력의 정통성을 합리화했다. 지난 역사를 보면 종교는 세상의 권력과 밀착해 발전했으며, 종교가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해 왔던 사례들은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종교가 중세만큼 어두워지지 않은 것은 자기 성찰에 힘입은 바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과학과 철학의 발달로 사람들의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교가 본연의 기능이 아닌 다른 명분으로 활용되는 예는 현대에도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부시 정권은 상극·상충·분열의 방법인 전쟁을 선택하면서도 ‘신성한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표현·표출·표방했으며, 미군 전사자들을 종교적으로 미화함으로써 이라크전을 정당화했다. ‘악의 축’ 발언은 국익을 우선시한 잣대를 가지고 인간을 선과 악의 편으로 나누어 규정한 것으로, 종교적 수사(rhetoric) 이면에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종교는 이렇게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역으로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에 이용되었다. 물론 이는 종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점에서 철학과 마찬가지로 종교의 한계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현재의 모든 제도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인간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이상, 세상의 어떤 학문이나 이념, 가치도 어느 정도 현상 유지에 기여할 수는 있겠지만 세상의 분열상을 해결하는 궁극적 수단이 될 수는 없다. 더구나 과거와는 폭과 깊이가 다른 후천역사의 흐름과 형국 속에서 그 역할은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는 기존의 철학과 사상, 종교를 뛰어넘는, 인간의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궁극의 방법론이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다음 주제-
3. 도인문화와 도인문명의 원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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