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호흡

수련체험기

나와 세 명의 조도반(가족이야기)

글쓴이: 안정화



아주 긴 시간을 지나 지금 여기에 있는 듯 하다.
나와 우리 가족 힘들고 긴 여정을 지나 도인의 길을 찾았다.

2005년 5월 처음 석문호흡에 입회를 했다. 도가 뭔지도 모르고, 수도자가 되고자하는 마음도 없었고, 그냥 삶에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요가 수업을 하면서 빼앗긴 기운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에, 또 나 이런 거 한다고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수련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다.

어린 시절은 늘 슬프고 외로웠다. 그 마음의 상태가 20대 초반까지 이어졌고, 이 현실이 싫어서 도피 하듯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결혼 생활도 행복하지 않았고 정신은 더 황폐해지고 우울함은 더욱 강해져 갔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늘을 보면 늘 눈물이 났다. 이런 내가 너무도 싫었고 존재감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 늘 부부싸움을 하고 서로 상처 주고, 믿지 못하고, 배신감을 가지고 생활 했다. 신랑은 술을 좋아해 하루도 술을 안 먹는 날이 없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술을 먹으면 정말 나를 힘들게 했다. 결혼하고 나서 술을 좋아 하는 사람 인 걸 알았다. 그래서인지 남편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에 대한 배신감 보다는 배신감이라는 감정이 내안에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남편의 조금만한 행동에도 크게 자극을 받았던 거 같다.

어린 시절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고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셔서 새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지 못했고, 나를 들어내면서 살지 못했다. 그런 탓인지 마음에 상처가 많았다. 학교를 못 다니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많았고 자신감도 없었다. 스스로 늘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지 않았다. 가슴이 늘 답답하고 우울했다.

결혼을 하면 행복해 질 거라고 생각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다 나를 힘들게 했다. 신랑, 시어머니 하루하루가 힘겨웠다. 그래서 신랑을 많이 원망했다. ‘너 때문이라고...’

그러다가 요가를 하게 되었고 요가를 하면서 내가 살아 있는 걸 느꼈다. 그 뒤로는 나만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 하면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신랑도 안 보이고 아이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다. 요가를 하면서 대학도 가고 대학원도 가게 되었다. 점점 욕심이 생겼고, 끝없이 무언가를 배웠다. 채워지지 않는 나의 욕심을 채우고자 노력했다. 수련을 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수련의 조금이나마 맥을 잡아간 것을 소주천 2분 운기 부터였다. 한사님이 조금씩 밀었다 당겼다 하시면서 공부의 맥을 잡게 해 주셨다. 중간 중간 공부에 맥을 놓히고, 많이 헤매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니 나의 어리석은 행동에 죄송한 마음이 든다.

소주천 2분 운기 시절 가정환경이 무척 힘이 들었다. 남편이 하는 일마다 안 되어서 남편이 무척 힘들어 했다. 이때만 해도 남편은 수련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도 이 사람이 수련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조금은 신랑을 무시했었다. 나의 이런 마음 때문인지 신랑은 술만 먹으며 ‘너 나 무시하지’ 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난 늘 ‘아니라고’ 말했다. 나를 속이고 있었던 것 같다. 점점 신랑의 주변 환경이 어려워졌다. 음주사고로 많은 돈은 날렸고 사업도 안 되었고, 어렵게 들어간 회사도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이상하게 이런 상황에 신랑에게 화가 나기 보다는 저러다가 잘 못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너무도 힘들어 하는 남편에게 ‘수련 한 번 해 볼래’ 하고 권하자 신랑은 마음이 힘들어서인지 선뜻 ‘한 번 해보지’ 라고 대답했다. 그 뒤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고, 수련을 시작한 뒤 놀라울 정도로 남편이 변화기 시작했다. 정말 고치기 힘들 것 같은 매일 술 먹는 습관을 조금씩 고치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또 생활 습관도 바꾸어 가고 무엇보다 자신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정말 놀라웠다. 수련하고는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수련의 힘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처음 남편을 좋아했던 순수한 모습을 조금씩 찾아 갔다. 수련하는 모습이 멋있어보였다. 인상도 많이 부드러워지고 젊어 졌다. 주의사람들이 모두 놀라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 어려웠던 환경이 너무도 감사하다. 그런 환경이 없었으며 신랑은 수련을 했을까? 어려웠던 환경이 너무너무 감사하다.

내 마음에 부정적인면이 많아서인지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자신이 편안하지 않았다. 우리 딸이 중2 한참 사춘기가 왔을 때 딸과 많이 부딪쳤었다. 늘 딸을 믿지 못하고 의심을 했다. 나는 딸을 위해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딸을 위함이 아니라 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 드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생각대로 딸을 대하다보니 늘 부딪치게 되었다. 나는 딸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딸의 행동을 내 생각대로 고쳐 보려고 했다.

딸이 중3이 되던 해 일월무예를 딸과 아들을 데리고 가게 되었다. 사람들은 현주를 무척 예뻐했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서 항상 주시를 했었다. 그 때 누군가 한 마디 하셨다. ‘딸을 왜 안 도반 틀 안에 가두냐고 한 존재’라고 하셨다. 그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왜 나한데 그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6박7일 동안 있으면서 무예를 열심히 배웠다. 무예가 힘들지만 할수록 재미있고 또 다른 나를 보는 뜻했다.

우리 조한사님이 특히나 딸 현주를 예뻐하고 적극적으로 하고자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셨다. 현주가 밝고 예쁜 아이라고 하셨다. 나는 겉으로는 웃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중2 때부터 현주는 한참 댄스에 빠져 있었다. 댄스부에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나는 반대를 했다 댄스는 안 좋은 거라고 생각 했다. 그런데 한사님은 적극적으로 댄스를 할수있게 도와 주셨고 일월 무예 오신 분들 앞에서 춤을 추게 해 주셨다. 많은 사람들이 현주를 예뻐하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6박7일 일정이 끝나갈 무렵 문득 현주를 봤는데 딸이기 보다는 도반으로 보였다. 그러면서 딸의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귀엽고 예쁜 딸이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았는데 나만 현주의 본 모습을 보지 못 했던 것이다. 댄스는 요쯤 내가 더 출려고 노력하는데 딸이 주책이라며 놀리기도 한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도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현주야 너무너무 미안하다. 이글을 마치면 꼭 이 마음을 전할 것이다.

그 뒤로 현주와의 관계를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물론 알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았다. 끝임 없이 수련하면서 노력하고 조언을 구해 실천하고자 했다. 지금도 계속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현주가 맑게 자라주고 있어 무척 고맙고 나에게 와 주어서 감사하다. 일월 무예를 갔다 온 뒤 딸은 수련을 시작했다. 중3때 시작해 지금은 고2가 되었다 3년동안 와식이지만 안하겠다는 소리 안하고 점검은 꼬박꼬박 받는 걸 보면 기특하다. 곧 좌식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애교도 많고 참 사랑스러운 아이이다. 하지만 지금도 문득 현주가 뭘 요구를 하면 의심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이런 나의 마음이 느껴지는지 하루는 현주가 ‘엄마는 왜 나를 못 믿어’ 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고, ‘너가 못 믿게 하니깐 엄마가 못 믿지‘ 라고 대답했다. 말을 하고 무척이나 후회를 했다. 차라리 말하지 말걸... 또 어느 날은 ‘엄마 수련하면 뭐가 좋아’ 라고 물었다. 나는 또 당황했고 이때는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딸의 한마디 한 마디가 나를 공부시킨다. 수련을 소홀이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순간순간 게으름은 참 고치기가 힘이 든다. 하면 되는데, 말은 쉬운데 실천이....ㅠㅠ

아들도 얼마 전에 수련을 시작했다. 올해 중1이라 도장에서는 가장 어린 도반이다. 아들은 어릴 적부터 신경을 많이 쓰이는 아이였다. 7세가 되면서 가격하고 활동적으로 변하기 시작 했다. 아들역시 나의 의심하는 마음으로 걱정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 들어가 2학년 때부터 싸움을 자주하고 다녔다. 일인자가 되겠다면서 자주 싸움을 했다. 학교에서도 조금은 그런 애 취급을 받았다. 나는 어릴 때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매를 들기도 했다 아들은 더욱 거칠게 나갔고 신경질 적이고 화를 자주 냈다. 나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방법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무조건 부드럽게 대했고 가능한 아들의 요구는 들어 주었다. 주의에서는 너무 아들만 위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때 그 방법이 최선 이였다. 아주 긴 시간 노력을 해야 했다. 그리고 집에서 수련을 할려고 노력했고 아들이 밤에 혼자 자는 걸 무서워해서 억지로 떼어 놓지 않고 같이 데리고 잤다. 지금까지 같이 자는데 요즘은 조금 고민이 된다.

내가 집에서 수련하면서 아들이 수련에 관심을 보였다. 행공도 한 번씩 따라하고 본 수련을 하면 아주잠깐이지만 옆에 앉아 있다가 가기도 했다. 차쯤 아들 명재는 공격적인 성격이 조금씩 순화되고 말도 많아 졌다. 수련을 하고자 마음을 먹은 계기는 창원 전체 체육대회였다.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 네 식구 모두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아빠와 함께 했던 여러 게임들이 재미있고 즐거웠던지 프로그램마다 참석을 했다. 아빠랑 함께 뛰면서 축구하고 함께 여러 게임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한 것 같다. 그렇게 아빠랑 함께 즐기고 놀았던 경험은 명재에게는 처음 이였다.

아들, 딸은 모든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석했다. 너무 의외의 모습이라 나도 조금은 놀랬었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번 체육대회는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한 특별한 날 이였다.

체육대회를 마치고 아들은 도장에 다니겠다고 흥분을 했다. 다음날부터 갈 거라고 도장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엄마는 어느 단계인지, 아빠는 어느 단계인지, 도장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 누구인지, 자기도 수련하면 높은 단계 갈 수 있는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들을 했다. 정말 아이들은 우리 어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다음날 가기로 약속을 했지만 도장에 가지 않았다. 막상 시간이 되어 가자고 그랬더니 하루만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나는 억지로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최근에 호흡도 안 되고 내면이 무척 힘들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우리도장의 도반님이 함께 산에 가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따라 나섰다. 집에서 가까운 안민고개라는 산에 올랐다. 대주천 기운으로 천지와 소통 한다. 라고 심법을 걸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비는 보슬 보슬 내리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비는 내리는데 옷이 젖지 않는 느낌 이였다. 그때 느낌이 좋아 혼자서도 몇 번 오르기도 했다. 한날은 통닭 사준다는 조건을 걸고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 갔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도 행복한 시간 이였다. 이야기 중 자연스럽게 수련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들은 또 여러 가기 질문들을 했고, 의수단전을 하면서 답변을 했다. 내 답변이 부족함은 있었지만 내가 아는 선에서 진솔하게 답변을 했다. 그 뒤 이틀 쯤 되어 한사님이 ‘명재 언제한 번 차 마시로 오라고 하세요.’ 라고 말씀 하셨다 나는 그날 저녁 별 기대 없이 있는 그대로 ‘한사님이 차 마시로 오라고 하던데’라고 했고 명재는 ‘왜?’라고 대 물었다. ‘엄마도 잘 몰라 너랑 차 마시고 싶으신가봐’ 라고 말하자 명재는 너무도 쉽게 ‘알았어’ 라고 대답했다. 나는 부담스러워 하고 싫다고 할까봐 별 기대는 안했는데 의외로 대답을 쉽게 해서 놀랬다.

아들은 수련을 안 할 때도 도장에서 나오는 녹차를 참 좋아 했다. 녹차는 사다가 놓고 잘 마시지 않았는데 아들 덕에 집에서도 자주 차를 마시게 되었다.

다음날 명재는 한사님과 긴 상담을 한 뒤 우리 집에 세 번째 조도반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 식구 모두 수련을 하게 되었다. 아들이 수련을 하면서 우리 집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억지로 뭉치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이제는 그런 노력을 안 해도 하나 인듯하다. 세 명의 조도반이 자랑스럽고 고맙기도 하지만 내 어깨가 무거워 진 느낌이다. 나 역시 수련에 대한 중심을 더 가지게 되었고 3년 동안 와식하던 딸도 조금은 긴장하는 눈치였다.

저번 주 일요일 오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의도해서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집에서 석문리더로 역할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에 애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아들과 같이 수련하고, 남편과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나 나름 석문리더로써 바쁜 하루였던 것 같다. 하루가 무척 뿌듯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이 정말 놀랍다. 우리 가족이 어려운 과정을 통해 모두가 도인이 되고자 한다는 자체가 너무도 감격스럽고 내 자신도 대견하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기회를 주신 하늘에 너무도 감사하다.

예전의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 우리가 수련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을 쓰러 내린다. 그래서 수련 할 수 있는 현재가 너무도 감사 감사 또 감사하다.

세 명의 조 도반님들께 감사하다. 이런 수련을 할 수 있게 해주어서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 했는데, 지금은 세 분의 도반에게 수련을 해주어서 감사하다. 세 명의 존재가 나를 더욱 공부 시키고 수련의 중심을 잡게 한다.

앞으로 나를 포함한 우리 집 세 명의 조 도반님들이 자기 자리를 잘 찾아 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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