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호흡

수련체험기

석문호흡 와식체험기

글쓴이: 박소연



박소연 / 부산장전 도장

와식 수련을 2005년 7월 19일에 시작했다. 21살이었지만, 그 이전부터 건강이 매우 안 좋았다. 일주일에 5일 정도는 병원을 다니고, 종종 쓰러졌고 응급실에 갔다. 상태가 다 안좋았지만, 양 한방 모두 병의 근원을 심장으로 보았다. 어린 나이에 질병명이 똑 부러지게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은 병원을 오래 다니니까 건강보험 공단에서 몇년 동안 나에게 진료내역을 확인하는 전화까지 올 정도였다. 오래 진료를 해주셨던 한의사분 께서는, 당신의 후배분이 나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나의 상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며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며 휴학을 하고 쉴 것을 권했다. 그러던 차에 석문호흡을 알게 되었고, 격렬한 움직임이 없고 자도 된다는 말에 시작하게 되었다. 도장 위치가 학교의 정문 앞이라는 것도 컸다.

와식 수련을 2005년 7월 19일에 시작했다. 21살이었지만, 그 이전부터 건강이 매우 안 좋았다. 일주일에 5일 정도는 병원을 다니고, 종종 쓰러졌고 응급실에 갔다. 상태가 다 안좋았지만, 양 한방 모두 병의 근원을 심장으로 보았다. 어린 나이에 질병명이 똑 부러지게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은 병원을 오래 다니니까 건강보험 공단에서 몇년 동안 나에게 진료내역을 확인하는 전화까지 올 정도였다. 오래 진료를 해주셨던 한의사분 께서는, 당신의 후배분이 나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나의 상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며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며 휴학을 하고 쉴 것을 권했다. 그러던 차에 석문호흡을 알게 되었고, 격렬한 움직임이 없고 자도 된다는 말에 시작하게 되었다. 도장 위치가 학교의 정문 앞이라는 것도 컸다.

첫날 수련을 시작하고 집에 가서 씻으면서 바로 단전 파스를 뗐다. 그야말로, 단전, 단전호흡, 와식, 단계 등 아무런 개념이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달리보면 아무런 상이 없이 시작한 것인데, 처음엔 도장이 참 좋았다. 무엇보다 도장이 밝고 따뜻하고 남의 말을 들어주는 분위기인 것이 너무 신기하고, 세상에 없는 공간 같았다. 지나가면서 도장 간판만 봐도 절로 웃음이 났다. 도장 바닥에 눌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방학 2개월 동안 하려고 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개강을 하고서도 다녔다.

개강하면서 수업, 평소 하던 활동들, 아르바이트 등등으로 바빴지만, 바로 도장 건너편에 살고 있었기에 밤 늦게라도 수련을 하고왔다. 수련 진도가 팍팍 나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련 할때는 오롯이 내 자신에게만 몰입할 수 있고 도장의 따뜻한 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러면서 도장과 수련에 대한 애정이 쌓여간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지금의 <천서>가 출간되기 전이라, 이야기만 들었지 한번도 보지 못해 지원장님께 말씀드려 빌려보았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확실한 건 이걸 미리 안보길 잘했다 싶었다. 나는 그 책을 먼저 보았다면, 솔직히 사이비 라 생각하고 수련을 안했을 것 같다. 수련을 만나게 된는 모습도 내 성향에 맞게 온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수련을 만난 첫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났다. 도장이 4층인데, 그냥 걸어 올라가도 10분 동안 숨을 헐떡거렸다. 가만 누워있어도 복통에 시달리면서 솔직히 호흡이 거의 안되었다. 나는 도장과 수련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하려는데, 조금씩 시간이 가면서 진도가 너무 뒤쳐지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학교에 가면, ‘몸이 아프다는 것은 다 핑계이고, 정신력이 있으면 모든 것을 버텨낼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모두가 자신의 갈 길을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데, 도무지 혼란스러웠다. 학교에 있으면 내가 마냥 게으른 사람 같다가도, 수련이 좋아서 하는데도 도무지 진도는 나가지 않고..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건강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남들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그 땐 수련에 대해서 당장 몸 적인 부분에서도 체득되는 부분이 없었기에, 수련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갔다. 내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 계속 못하겠다면 그만 두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수록 자연스럽게 수련은 더 더디었던 것 같다.

그러다 여름에 좋지 않은 일을 겪고, 이사와 함께 집에서 가까운 지원을 옮기게 되었다. 정신적 충격에서인지, 건강은 더 나빠졌다. 도장에 가려면, 10분 정도 걸어서 버스 정류장에 가야하는데, 그 10분을 걷지 못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사지가 무력했고, 온 몸이 뻣뻣하게 굳었고, 6개월 가량을 목에서부터 음식을 넘기지 못했다. 이 때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서 한의원 진료를 받고 도장을 다녀오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것도 너무 힘들어서, 도장에 다녀오고 나면 집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서 쉬었다.

새로 옮긴 도장에서 불을 끄고 본 수련을 할 때면, 밖으로 나있는 창문만이 환했는데 그 장면을 통해서 연상되는 장면 때문에 너무 공포스러웠다.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러한 환경에서 오랜 습이 자연스럽게 발동했던 것 같다. 본 수련 시간 40분 정도가 영겁의 시간 같았다. 그 시간 동안, ‘수련은 너무 좋은데 내가 이 수련을 할 수 있을까, 봐 남들은 그렇게 진도가 잘되는데 나는 아무리 해도 안되잖아, 어차피 안될꺼 그냥 그만 두는게 낫지 않을까, 잘안되서 상처만 받잖아’ 이런 류의 생각만 들었다. 하단전에 진기를 축기한다는 심법을 걸어봤자, 나의 내면이 그 심법에 힘을 싣지 못했는데 수련이 진행될 리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해보려는 마음은 있는데, 건강을 비롯한 여러 환경은 따라주지 않아 결과가 제 때에 좋게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그것이 결국 내 자신감을 깎아먹어서 결국 내 자신을 믿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 그러한 모습으로 나는 살고 있었고, 그 모습이 수련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솔직히 나보다 뒤에 입회하고서도 잘나가는 도반들이 많았고, 단전에 점을 찍은 듯이 집중한다는 평을 듣는 도반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나는 잘하고 싶은데 못 그러는 게 너무 마음아프고 슬펐고, 그럴수록 수련은 더 안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진행 과정은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게 1년을 훌쩍 넘기고 수련에 큰 진행이 없고 자신감이 더뎌지자, 11월인가 12 월쯤에 처음 등록했던 도장에 가서 수련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게 되었다. 예상외로 지로사 께서는 그럴 것 같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수련을 그만두는 것은 괜찮다. 근데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이냐’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정곡을 찔렸기에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수련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방식이 매사에 나를 믿지 못하기에 결과가 좋지 못하고 또 다시 나를 미워하는 것인데, 수련을 그만둔다고 해서 이런 내 모습이 없어지는게 아닌데, 뛰어넘지 못하는 내 자신이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그때부터 그동안 내 삶에서 힘들었던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우느라 도장에 있던 두루마리 휴지1통을 다 쓰고 나왔다. 울고 나니 후련해졌고, 다시 수련할 마음이 보였다.

그러고 해가 바뀌어, 와식 98%가 되어 명사님 점검을 받았다. 돌아오는 결과도 역시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모든 것은 수련자의 의지에 달려있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였다.

그 말을 전해주면서 지로사는 나에게 수련할 때 하루 10번씩 ‘나는 나를 믿는다’를 외쳐라고 했다. 그 말을 따라 해보라는데, 나는 또 ‘아 정말.. 내가 한사님 괴롭히려고 그러는게 아니고, 진짜 내가 못하겠어서 못하겠다고 하는데.. 왜이러시나..’ 싶으면서 아주 개미만한 목소리로 ‘나는 나를 믿는다’고 힘없게 중얼거렸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이그 그러니까 못하지’였다. 그 말에 또 욱했지만.. 어쨌든 한 10일 정도 그렇게 수련했던 것 같다. 본 수련 중에 단전에 대고, ‘나는 나를 믿는다’고 외쳤다. 처음엔 너무 어색했고, 나를 안믿는데 하려니 너무 짜증났고, 진심이 담기지 않았다. 조금씩 의미자체 집중하고 힘을 실으려고 했다. 어느 날 너무나 신기하게도, ‘나는 나를 믿는다’라는 외침에 너무나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래, 말하는 게 뭐 어렵나 그냥 하면되지’라고 생각하면서, 결과에 신경쓰지 말자고 그냥 하자고, 그런 맘이 들면서 나를 믿는다고 외쳤다. 그리고 너무나 신기하게 그 다음이 점검 날이었는데, 좌식으로 승급했다. 입회하고 해가 두번 바뀌고 나서, 개월로는 18개월을 꽉 채운 승급이었다. 도반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수련을 그만둘 것 같았는데, 꾹 참고 그 긴 와식을 넘겼다고 축하해주었다. 나는 항상 수련을 좋아하고 잘하고 싶었는데, 그만둘 것 같았다니 좀 어색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첫 번째 관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제일 어려웠던 단계가 와식이다. 솔직히 수련에 대한 맛을 알고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3행공 하는 것보다 수련과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1행공 하는 게 더 어려던 것 같다. 근본적으로는, 수련 뿐만 아니라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습을 뛰어넘었던 첫 단추였다. 물론 그것이 완벽하게 고쳐지는 것은 절대 아니었고 이후에도 크게 보면 그러한 부분에서 내 공부가 많이 작용했던 것 같다.

남들보다 한참 뒤쳐졌던 승급이었지만, 나에겐 그만큼 값진 것이었다. 수련한지 만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대주천 수련을 시작했다. 기나긴 와식 때는 온양을 보면 ‘내가 저것을 할 날이 있을까’ 했고, 대주천 이후부터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때는 내가 대주천 수련을 할 것이라 상상도 못했다. 건강도 좋지 않았고, 도장도 멀었고, 매번 점검 때 집중 못한다는 말만 들었던 내가 (지금도 진도가 느리지만) 대주천 수련까지 할 수 있었던 것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계속 하는 것. 수련을 계속하면서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닦고 중심을 세웠던 것 그것 말고는 없다.

이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나처럼 건강도 안 좋고, 내면까지 흔들리면서 수련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도반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이다. 상황이 얼마나 안좋건 간에 마음을 내고 실천을 하면, 정성을 들인만큼 반드시 내 자신이 변하고 밝아진다는 것이다. 그 과정이 절대로 공짜로 진행되지는 않지만, 과정 속에서 내 자신이 발전하고 밝아진다는 것, 지금 아무리 힘들고 뒤쳐지더라도, 절대 수련이 진행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 어려움 속에서 마음을 내는 것이 더 참 수련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결과와 변화가 바로바로 눈에 보일때 믿음을 가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고, 그렇지 않을때 조차 마음을 내고 계속 노력하는 것이 참 수련이고 정성인 것 같을 때가 많았다. 나의 경우 그러한 정성과 실천은 꼭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러니 나처럼 낮은 단계에서 확신이 없어 힘든 도반님들에게 힘내시라고, 꼭 되실꺼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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